만족

만족

만족은 주로 귀주 신검서, 금사, 대방 3개 현의 합류부에 산다. 방지의 기재에 따르면 만족의 전입은 청조조정에 의해 군사계획을 실시한것으로 된다. 청나라 강희 12년 (1673), 오삼계는 청조를 배반하고 황제로 칭하였으며 서남 각 성에 전쟁이 일어났다. 19년, 청나라조정은 록영보병을 선두로 했고 만족의 장병들은 잇달아 판군을 평정하고 검서와 등지를 수복했다. 일부 만족의 장병들과 그들의 가족은 검서에 정착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귀주성 해방전에 한족이라고 자칭하였고1981년에 고찰과 식별을 거쳐 성인민정부는 만족성분을 회복하는것을 비준하였다. 만족의 언어는 귀주에서 사라졌다. 몇몇 노인들만이 만어로 간단한 일상 용어를 쓰거나 하기를 읽을 수 있다. 중국어 한문을 사용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되기전에는 복식과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였다. 지금은 남녀 복식, 관혼상제 풍습이 현지 민족과 같다. 민간 문학에는 이야기, 전설,가요, 속담 등이 있다. 돌 조각과 흙 조각의 솜씨가 뛰어나고 부녀들은 자수를 놓거나 십자수 및 뜨개질을 잘 한다. 전통 명절은 현지의 형제 민족과 대부분 같다. 다른 것은 설날 (혹은 생일)에 불방의 그릇 받침대에 좋은 요리를 차려놓고 “모양의 요리(样菜)”라고 한다. 설날 초하루부터 15일까지 매일 매끼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고 먹지 않는다. 밥을 먹구 난후에 다시 제자리에 놓고 매끼마다 이러하며 보름이 지나서 그 음식을 먹는다. 대대로 거처하던 만족은 조상과 다신을 믿었으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그릇가에 제사를 지내는 신이 비교적 보편적이였다. 귀주가 해방된후 만족집거지구에 민족향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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